전기차 캐즘으로 국내 EV 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반면 '중고 전기차' 판매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의무 보유기간이 도래하면서 시장에 매물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가격이 하락한 것이 원인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신차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걱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신차 잔존가치에 대한 우려로 인해 판매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4일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 '3분기 누적 중고차 실거래 대수' 분석 결과 중고 전기차 거래 대수는 2만4924대로 전년 대비 45.3%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동기간 전기차 신차 거래 대수가 7.8% 하락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전기차 중고 매물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을 원인으로 꼽았다. 국내 최대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매물 중 전기차의 비중은 2020년 0.32%에서 올해 2.64%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차 초기 구매자들의 의무 보유 기간이 도래한 지난해엔 전년 대비 33% 증가한 약 1만7400대의 연간 대수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약 1만9000대의 전기차가 엔카닷컴에 등록됐다. 이처럼 시장에 매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가격이 떨어졌고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신차보다 저렴한 중고차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올해 월 별 전기차 거래 비중은 평균 2%대를 유지하면서 완만하게 성장하는 모양새를 그렸다"며 “신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합리적인 가격대의 전기차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선택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신차와 중고차의 상반된 흐름에 대한 걱정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중고 전기차의 갑작스런 수요 증가 요인이 전기차에 대한 인기가 아니라 '가격 하락'이기 때문이다. 중고 전기차의 가격 하락은 신차의 잔존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이는 신차 구매를 더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기차의 인프라와 이미지가 더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고차의 가격만 떨어진다면 신차를 구매할 요인이 그만큼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전기차의 중고거래 활성화가 과연 정상적으로 전기차의 편의성과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해서 확대되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차 판매 증가는 신차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며 "특히 최근 중고 전기차 거래의 상승세는 평가 절하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신차 판매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만약 중고 전기차 상승세가 전기차의 편의성과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해서 확대되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그러나 연이은 화재와 캐즘으로 인해 중고 전기차 재고가 쌓였고 그로 인한 가격 하락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면 신차 판매는 오히려 더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신차와 중고차 시장 모두가 성장세를 보이려면 전기차 인프라 확대, 이미지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찬우 기자 lcw@ekn.kr